AI · EEUM COLUMN

더 빨리 만드는 사람은 오래 못 간다

생산 속도가 평준화된 뒤에도 남는 것은 질문과 판단, 축적된 원천이다.
석종득전략집단이음 대표컨설턴트

속도가 경쟁력이던 짧은 시기

AI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와보니 내가 먹고살 새 시장도 AI가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 말에는 기대와 불안이 함께 들어 있다. 생성형 AI는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이전에는 조직만 가질 수 있던 생산 속도를 주었다.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고, 코드를 고치는 일이 빨라졌다.

처음에는 도구를 먼저 익힌 사람이 분명히 앞섰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구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그 격차는 곧 줄어들었다. 누구나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형식의 결과물을 내놓는 순간, 빠르다는 사실만으로는 선택받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모두가 빨라진 시장에서 속도는 차이가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된다.

생산이 쉬워질수록 어려워지는 일

생산량이 늘면 시장은 풍요로워지는 동시에 혼잡해진다. 읽을 글, 볼 이미지, 검토할 제안서가 넘쳐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는 더 불분명해진다. 이때 가치가 커지는 것은 만드는 기술보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질문, 사실과 과장을 가르는 검증, 여러 산출물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는 판단이다.

AI는 답을 빠르게 만들지만 조직이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는 정해주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 가운데 무엇을 남길지, 어느 데이터를 믿을지, 누구에게 어떤 언어로 설명할지도 대신 책임지지 않는다. 속도를 관리하는 사람보다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오래 남는 사람은 원천을 만든다

지속되는 경쟁력은 결과물의 개수보다 다시 쓸 수 있는 원천에서 나온다. 조사한 자료와 판단의 근거, 실패와 수정의 이력, 조직만이 가진 개념과 방법을 축적하면 한 번의 작업이 다음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AI는 이 원천을 더 빠르게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앞으로 오래 남는 사람은 AI보다 빨리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무엇을 만들도록 할지 결정하고, 그 결과가 사실과 목적에 맞는지 책임지며, 매번의 작업을 다음 판단에 쓸 지식으로 남기는 사람이다. 생산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지휘하는 질문과 판단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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